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돈바스 전쟁 (문단 편집) == 기타 == 이 전쟁은 매우 특이한 선례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개적인 [[스트리밍]]을 통해서 부족한 물품을 지원받는다는 점인데,[[http://weekly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8/2019032802334.html|#]] 사실 이런 식의 기부금이나 군수물품을 민간의 도움으로 보급받는 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나 [[알카에다]] 등 조직이 부실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집단들이 해왔던 일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조직이 부실하지도 않고, 명분이 있음데도 공개적으로 지원을 호소해 개인들로부터 기부금이나 군수물품을 보급받아 전쟁에 활용하고 있다. 다만 위 문단은 오해가 있는 것이, 군수물자의 상당수를 민간 기부나 사비를 털어 확보하는것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이 아닌 아조프 연대같은 민병대, 준군사조직의 얘기고, 우크라이나군은 당연히 정규군인 만큼 자체적인 체계와 보급이 근간이다. 물론 부족했던 만큼을 민간에서의 전폭적인 지원과 희생으로 채운것은 사실이지만, 근대국가의 역사에서 이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도 좁게는 방위성금기, 넓게는 6.25 전쟁의 비슷한 예시가 넘친다. 밀덕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특이한 전쟁이다. 오랫동안 소련의 [[주력 전차]] 자리를 놓고 정치적 분쟁을 벌이던 [[T-64]] - [[T-80]] 계열과 [[T-72]] - [[T-90]] 계열 전차가 이번에는 서로 포격전을 하면서 기구한 집안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다. T-80 계열 공장이 우크라이나에 위치하고, 러시아의 공장은 모조리 문을 닫은 통에 러시아에서 80계열의 명맥이 끊겨버리고,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공장은 80계열을 계속 마개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전쟁에 대한 논문에 의하면 동세대의 T-64, T-72, T-80간 교전에서의 교환비는 1:1 수준이라 한다. 하지만 현대화 개량을 받은 T-72의 경우 평균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의 구형 125mm 전차와 3대1 정도의 교환비를 실전에서 선보였고 러시아군에서는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위키나 밀리터리 사이트에서 걸고 넘어지는 사소한 마이너 스펙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동세대의 구형 T-64, T-72, T-80간 실전 전투력 차이는 거의 없다는 평가도 있다. 보병들의 화력전도 상당히 특이한 양상이었는데, 보통 보병들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은 단연코 [[박격포]]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어느나라 군대에서든 흔히 볼만한 분/소대형 [[60mm 박격포]]나 중/대대형으로 쓰이는 [[81mm 박격포]]조차도 자주 보이지 않았다. 여건 상 박격포를 편제에 넣을 화력이 부족해서 라기에는 박격포 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무기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의문스러운 부분. 후술할 무기들이 더 가성비가 뛰어나거나, 그렇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들은 참호와 진지를 구축한 다음, 상급 부대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거나 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면, 현장 인원들이 독자적으로 그 부족한 여건 속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화력을 끌어모은다. 러시아 AGS 계열의 [[고속유탄기관총]]을 [[https://youtu.be/CW68aPsFC_Q|박격포 대용으로 사용한다.]] 매우 고각으로 사격해서 유탄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게 흩뿌리는 것. 정부군과 반군을 막론하고 저렇게 쏘는 것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영상에도 나오듯이 '''감으로 일단 쏘고''', 착탄지점 근처에 있는 병사가 무전으로 어디 떨어졌는지 알려주면 거기 맞춰서 또 '''감으로''' 각도를 수정하는 방식이니 명중률은 당연히 엉망이다. 또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들에서 그랬듯이 [[RPG-7]]이나 [[RPG-22]] 같은 [[https://youtu.be/2_6YT2emHnQ|대전차 로켓 탄두를 미리 개조해두었다. ]] 영상 설명과 댓글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위험한 행위다. 이러다 사고가 난 적이 몇번 있다보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그냥 애초부터 탄두가 개조된 버전으로 생산해준다는 [[카더라]]도 있다. 이렇게 개조하여 최대사거리를 늘린다음 하늘에 대고 적을 향해 발사하기도 하며, 소련제 [[PTRD-41|대전차 소총]]들까지 동원하는등, 정말 화력우세와 사거리 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선에서 전투하는 장병들이, 주먹구구식 교리까지 정립해 쓸 정도로 노력을 다한다는건 그만큼 우크라이나는 군대 자체에 보병들의 화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 육군이나 해병대의 보병 출신인 군필자들이라면 잘 체감했겠지만, 보병교리가 가장 낙후되고 취약하다는 한국군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다. 한국은 상술한대로 보병대대 예하에 다수의 60mm 박격포와 81mm 박격포,[* 게다가 [[81mm 박격포#s-2.9|신형 모델]]도 등장해 2020년대 부터 군에 실전배치되고 있다.] [[K4 고속유탄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노후된 [[90mm 무반동총]]까지 [[현궁]] 대전차미사일로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한국은 좁은 영토 특성상 인접 부대와의 제병협동 작전을 벌이는 것을 기본 교리로 삼고 있고 기갑과 포병, 항공 장비의 수는 우크라이나군과는 비교도 안 되게 월등한 편이므로 비교적 화력지원 요청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한국군보다 훨씬 열악한 여건 속에서 더 적은 수의 군대로 남한면적의 6배나 되는 국토를 방위해야 하는 입장인데, 돈바스 지역에 전쟁이 발발하고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그곳에 화력을 분배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단, 소강상태로 진입한 현재에도 이런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심지어 제식 채용된 지 100년도 넘은 [[맥심 기관총#PM M1910|PM M1910]]이 다시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식명 그대로 제식 채용 연도가 1910년, 그러니까 소련 시절도 아니고 무려 [[러시아 제국]] 시절이다!([[M1911]]과 비슷하다.) 물론 생산은 소련 성립 후에도 계속되어,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생산되었다곤 하지만 기관총이라 해도 CZ Vz.26도 아닌 이런 할아방탱이를 갖다 굴리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전쟁 전까지 우크라이나가 이 기관총 3만 5천 정 가량을 치장물자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고착화되자 2016년부터 이를 꺼내서 공식적으로 재도입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치가들이 부패로 돈을 벌기 위해 수많은 재래식 병기들을 세계의 분쟁지역에 팔아넘겼던데다가 2000년대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자주 군사합동훈련도 하는 사이였다. 즉, 우크라이나는 자국이 급격한 친서방 정책을 펼칠 시 러시아와 전면전 수준의 분쟁이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안보불감증에 시달린 상태에서 제대로 된 무기들을 보유하지 못했고 러시아에 제대로 허를 찔린 것이다. 우크라이나나 친러진영 모두 소형 민수용 [[무인기]]를 활용해서 정찰을 하거나, 작은 폭탄을 달아서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aNzYWu89agU|#]] 우크라이나군은 이때 크고작은 무인기들과 인터넷의 연결이 매우 유용하다는 전훈을 얻었고,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확보해둔 무인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영국이 돈바스 전쟁중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무기를 대량 수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하원 무기수출통제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면허가 251건이나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저격용 총기와 야간투시경 등이 공급됐다고 밝혔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제재 조치에도 러시아와 1억 3천만 파운드, 2300억 원 규모 무기수출 거래를 유지해 전년도보다 오히려 52%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국 상무부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 면허를 다시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유지되고 있는 면허는 모두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또 대공화기를 비롯한 일부 무기는 브라질 해군으로 인도될 예정이며, 러시아군에게는 어떤 미사일이나 미사일 부품도 수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12억 유로(약 1조 6600억 원) 규모의 상륙함 수출 포기 압력을 받았던 프랑스의 집권 사회당은 이런 소식에 "캐머런 총리의 위선이 드러났다."며 반격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비난여론에 부딪히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사개입하는 벼랑끝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러시아 국민과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지세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에 군사개입을 단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푸틴의 지지율이 아주 살짝 감소한 적 있다. 지지율이 81% 이상에서 79% 정도로 하락. 일반 국민뿐 아니라 크림 반도 합병에 열광했던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러시아 극우세력 LDPR[* [[러시아 자유민주당]].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부르짖는 극우파 정당이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 등 친러세력의 개입 요청에 부응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푸틴 대통령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브레인'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은 이달 초 미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에 개입하지 않으면 푸틴 대통령은 끝"이라고 일갈했다. 두긴의 일갈은 스티븐 F. 코헨의 "우크라이나를 서방에게 빼앗기는 그날로, 푸틴이 지금까지 이룩했던 모든 업적들과 역사에 남을 입지, 기반은 모두 무(無)가 돼버린다." 는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두긴은 미국 중심 가치관에 대항하는 '[[유라시아주의]] 사상'을 주도한 인물이다. 영국왕립국방연구소(RUSI)의 러시아 연구원 이고르 스투야긴은 "푸틴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놨다."고 평가했다. 그는 "경기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국내 구심력을 유지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 합병에 이은) '새로운 승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보로시야 측에서 부상당한 주민들을 돌보다가 우크라이나군에게 간호사가 고문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SNS에 여성 간호사의 사진을 올렸는데, 해당 사진의 주인은 [[사샤 그레이]]라는 포르노 배우 사진이었다. 즉 빼도 박도 못할 가짜 뉴스. 우크라이나 축구협회가 크림반도에 있던 축구팀들을 러시아에 강탈당했다고 FIFA에 제소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8131141g|#]] 다만 [[세바스토폴]]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팀들도 친러 성향의 팬덤이 형성된 팀들이다. 미국과 유럽은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친러세력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푸틴의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격추 사건의 진상을 둘러싸고 서방과 대립이 깊어지면 추가제재에 직면할 상황이지만 애국심에 기반한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친러파를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무장세력의 3분의 1은 러시아 출신 의용병이다. 지도부 역시 대부분이 러시아 출신이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투를 지휘하는 러시아 출신 이고르 스트렐코프 사령관은 체첸 분쟁에도 참여했던 사람이다. 푸틴 정권의 통제 아래 있는 언론매체가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부를 '파시스트'로 칭하면서 러시아계 주민이 탄압받고 있다고 연일 보도해 러시아인들의 참전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슷한 일이 자국에도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가상으로 친러파 준동에 대처하는 훈련을 2015년 6월에 시행하였다 시위 진압부터 내전 상태, 더 나아가 정규전까지 이르는 상황에 대해 훈련을 시행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Xd3dM2IuMc8#t=133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448079&page=1&search_pos=-444116&s_type=search_all&s_keyword=%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갑갤 짧은 해설]] 미국 등의 서방권 커뮤니티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을 풍자하기도 했다.--[[http://weknowmemes.com/wp-content/uploads/2014/03/visit-russia-before-russia-visits-you.jpg?|#(삭제됨)]]-- [[https://www.google.com/search?q=visit-russia-before-russia-visits-you&sxsrf=ACYBGNRjQz-ui9Ohjl3iC_F5OVg1swxw2Q:1578449279496&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j8nObk9fLmAhUFHaYKHcNRDDoQ_AUoAXoECAsQAw&biw=1920&bih=969|구글 이미지 검색]] 우크라이나의 [[페미니즘]] 단체 [[페멘]]이 돈바스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로 도주했다는 주장이 한국 커뮤니티상에서 횡행하고 있었다.[[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39406|#]][[https://blog.naver.com/zcjhz_1/221145491624|#]][[https://www.etoland.co.kr/plugin/mobile/board.php?bo_table=etohumor04&wr_id=149602|#]] 그러나 페멘이 우크라이나를 떠난 것은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기도 전인 2013년 8월 30일의 일이며[[http://www.pravda.com.ua/news/2013/08/31/6997008/|#]], 당시 페멘은 [[키이우]]의 사무실을 폐쇄하면서 그 명분을 '자신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페멘에 따르면 실제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은 2010년 조기 대선에서 승리한 후로 페멘 소속 활동가들을 위협하려고 했으며, 2013년 8월 27일에는 우크라이나 경찰당국이 (역시 페멘의 주장에 따르면) 조작된 무기소지 혐의로 처벌하려 시도했다. 즉 페멘은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떠난 것이며, 오히려 페멘은 돈바스 전쟁이 한창이던 2014년 여름 키이우에서 활동을 재개했다.[[https://www.nbcnews.com/video/topless-trio-arrested-during-ukraine-protest-33976387817|#]] 그리고 페멘의 활동 약화는 돈바스 전쟁보다는 지도부 중 한 명이 자살해서 이를 복구하지 못한 데 있다. 이러한 허위정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이후 더 유포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